길리걸 찾기, Ghillie girl story

 

--혜인 이야기--

 

혜인은 도시 사람이다. 그녀는 유년 시절 할머니가 사시던 시골에서 방학을 종종 보내곤 하였으나,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더 이상의 시골은 없었고, 그렇게 나이가 들며 도시 속에서 바쁜 삶을 살게 되었다. 

 

혜인은 회사원이다. 3년차 사원이며, 용건 없는 야근을 하는 것이 일상의 대부분이다.  어느 날 회사 내 혜인의 옆자리 동기가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하였다. 동기의 여행이 부러웠지만 금새 식었다. 왜냐하면 바쁜 혜인은 여행도 일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컴퓨터 모니터 배경화면인 자연 풍경이 실제로 존재한다’ 라는 동기의 한마디가 계속 맴돌았다.

 

혜인이 다니던 회사의 규모가 커져 이사를 했다. 이사하면서 이전에 있던 죽은 화분들을 싱싱한 식물들이 막 자라나는 새로운 화분으로 교체 했다. 일 하는게 지루한 그녀는 근무시간 중 탕비실, 화장실, 휴게실 등 여러 곳을 전전하며 최대한 쉬는 시간을 버는데, 새로운 화분 덕분에 매일 식물에 물 주는 시간을 가졌고, 이는 합법적으로 쉬는 느낌이라 좋았다. 그렇게 시작된 식물에게 물주기! 생각보다 잘 자라는 식물을 보며 혜인은 애정이 깊어 졌고, 식물, 자연의 신비에 관심이 생겼다. 처음에는 관심 없었던 컴퓨터 배경화면인 자연 풍경이, 이제는 불멍(?)과 비슷한 맥락으로 확장돼 종종 모니터를 보며 쉼을 가지곤 했다.

 

사진 전공자 혜인은 그렇게 점차 자연 풍경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바쁜 사회 생활 속 도피처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 다닐 때 배웠던 풍경 사진의 대가 '안셀 아담스'가 되고 싶었다. 막연히 그를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즉흥적인 퇴사와 동시에 풍경 사진가로 전향하기로 하였다.

 

현실은 달랐다. 자연 풍경을 찾으러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깊은 자연을 탐험할수록 생전 처음 보는 벌레들에게 물렸고, 뱀을 피해 도망치기 일수였다. 자연은 한계가 없어서 무서웠다. 그래서 혜인은 좌절했다. 그리고 안셀 아담스와 뿌리부터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혜인은 자연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자연이란 회피로 시작되었고, 벌레 없는 식물과 모니터 자연풍경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혜인은 깨달었다.

-  자연은 너무 큰 곳이다. 

안셀 아담스와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이다.

회피로 시작된 자연 속에서 온전한 여유를 느낄 수 없다.

 

오늘도 혜인은 결국 얻은 것 없이 하산을 결심했다. 하지만 내려가는 도중 업 친데 덮친 격 발목을 접질려 넘어졌고, 20미터정도 굴렀다. 발목이 퉁퉁 부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소리쳐 도움을 요청했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밤이 되었다.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공포스러웠다. 그래서 소리가 향하는 곳을 주시했고 자세히 보니 큰 지푸라기 덩치가 움직였다. 혜인은 겁에 질려 아픈 발목을 질질 끌며 도망쳤다. 지푸라기 덩치가 따라왔고, 그녀에게 총을 겨눴다. 


눈을 질끔 감으며... 이렇게 죽겠구나 싶었는데...


발목에 총알이 쏴 졌다. 안 아팠다. 눈을 떠보니 팝콘이였고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이것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읽어 주시던 동화 속에 등장한 길리걸의 치유의 팝콘? 

 

 

 

--길리걸 이야기--


배틀 그라운드라는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100명의 사람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서로를 죽이고, 최후의 1인이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길리걸은 배틀그라운드 에란겔 출신이지만 그곳이 무서웠다. 그래서 지푸라기로 뒤덮인 옷(길리슈트)을 입고 숨어 다녔다.


그녀 외의 다른 사람들(낙하산 타고 내려온 99인)은 서로를 죽이고 죽여 100명에서 50명, 50명에서 10명 점점 수가 줄고 있었다. 마침내 길리걸과 누군가, 마지막 2인으로 남게 되었고 길리걸은 살인을 해야 최후의 1인으로 살아 남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녀는 죽음보다는 삶을 택했고, 최후의 2인으로 살아남은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었다. 그래서 선물을 건네고 그를 설득하려 했으며, 플레이 건을 이용해 구호물품을 요청 받아 구호물품을 선물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길리걸은 다급히 플레이 건을 쐈다. 하지만 총을 잘못 짚어 9탄 권총을 하늘에 쐈고, 길리걸을 향해 날아오는 그에게 맞고 말았다.

 

길리걸은 살인을 해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살인에 대한 죄책감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 산속으로 숨고 말았다.

 

정확한 계산은 어렵지만 길리걸은 몇 십년 동안 산속에서 자연인으로 살았다. 피고 지고, 잠들고 일어나는 자연 속 풍경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얻게 된 나의 삶을 평생 잊지 않으며, 잊지 않기 위해 내 한 몸 희생하여 누군가를 살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9탄 총을 개조해 자연의 신비를 불어넣어 치유의 팝콘 총으로 만들었다. 옥수수 총알을 넣어 총을 쏘면, 자연의 힘에 마찰을 입어 치유의 팝콘이 생성된다.

 

 

 

--혜인과 길리걸의 첫 만남--


치유의 팝콘을 맞은 혜인의 발목은 금새 나아졌다. 그리고 전설 속 길리걸을 만나 너무 놀라웠다. 길리걸 또한 본인의 치유의 총이 힘을 발휘해 누군가를 낫게 해준다는 것에 기뻤다. 혜인과 길리걸은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길리걸은 치유의 팝콘 총으로 어두운 밤을 은은하게 밝혀줄 마가린 팝콘 조명을 만들어주고 떠났다. 

혜인은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그 동안 현실에 피로를 느껴 자연을 가장한 도피를 탐했고, 자연이라 믿었지만 사실 회피를 했었다 는 것을. 이러한 방법으로는 평생 자연과 온전한 여유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좋은 풍경사진은 안셀 아담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나만의 방법으로 온전히 느끼는 것이고, 혜인에게 그것은 여러 고난 끝에 길리걸을 만난 것이라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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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회에서 주체성을 잃고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거나 무감각해질 때, 우리와 같은 존재인 길리걸을 만난다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와 힐링의 상징인 길리걸을 만든 서혜인은,  인간이 구축한 불필요한 제약과 제도, 그리고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부조리에 피로감을 느껴왔다. 이러한 지친 상태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색하던 , 인류애를 기반으로 한 캐릭터 설정을 통해 길리걸을 구상했다. 간 내면에 본래 자리하고 있지만 점차 잊혀가는 본질적 특성을 자연으로 설정하고, 이를 투영하여 길리걸을 창조했다. 이야기 속 길리걸은 혜인과 같은 존재로, 같은 인간끼리 서로를 돕고 치유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